시작하며
안녕하세요. 테크니컬라이팅 팀의 Crystal(김유리), Sandy(차신영), Haim(이해영)입니다. 오늘은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지켜야 할 글쓰기 윤리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혹시 NASA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아시나요? 1986년 미국의 왕복우주선 챌린저호가 모두의 기대 속에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에 폭발하고, 탑승객 7명이 모두 사망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사고입니다. 조사 끝에 사고 원인은 작은 부속품에 불과했던 고무패킹(오링, O-ring)이 추위에 얼어붙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외에 드러난 사실 하나가 바로 오링 봉인(O-ring seal) 관련 문서의 문제점이었습니다. 당시 NASA 엔지니어가 작성한 문서에서 오링에 대한 내용은 중간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었던 반면, 발사 승인 정보는 독자가 주로 집중하는 문서 시작과 끝에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엔지니어는 모든 위험 요소를 포함한 보고서를 작성하려던 것이었겠지만, 문서의 독자였던 관리자는 오링 결함의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선택적으로 정보를 강조한 것이 된 셈입니다.
이렇게 정보를 구성하고 강조하는 방법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내용이 달라지는데요. 중요한 정보를 긴 단락 속에 숨기거나, 비교적 사소한 사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시키는 방법은 독자의 왜곡된 해석으로 이어져 악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는 테크니컬 라이터는 윤리적으로 글을 구성하고 작성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글쓰기 윤리란 무엇이며, 이를 위한 실천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팅과 글쓰기 윤리
모든 직업은 윤리 강령을 가집니다. 직업 윤리에 따라 기자는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금융인은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엔지니어는 시민사회의 복지, 안전에 부합하는 공학 연구를 수행합니다. 이처럼 윤리 강령은 그 직업이 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요. 테크니컬 라이터도 윤리 강령이 있습니다. 테크니컬 커뮤니케이션 협회(Society for Technical Communication)는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로서 지켜야 할 6가지 윤리 원칙을 제시합니다. 원칙의 일부인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하기 전 허가를 받고, 실질적으로 기여한 이들에게만 저작권을 부여한다'가 바로 글쓰기 윤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글쓰기 윤리는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윤리’입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글쓰기 윤리란 정직성, 정확성, 명확성을 지키는 글쓰기라고 하는데요. ‘저자가 정직하게 글을 쓰고, 정확한 정보를 기술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글로 공유하기에 앞서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글쓰기 윤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행위가 비윤리적인 글쓰기에 해당할까요? 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텐데요.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서는 표절, 위조, 변조 등을 부정행위로 규정합니다.
‘표절'은 타인의 창작물을 베끼는 일입니다. 보통 의도적으로 따라 쓰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것처럼 발표하는 등의 행위만을 표절이라 생각하기 쉬운데요. 의도하지 않은 베끼기도 표절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지식이 아닌 사실, 통계 등을 출처 기재 없이 사용하는 행위를 의도하지 않은 베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인용 방법을 몰라 타인의 글과 내 글을 혼동해 내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표절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위조'는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나 연구 결과를 있는 것처럼 꾸며내는 일이며, ‘변조'는 임의로 내용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입니다. 위조와 변조는 모든 분야의 글쓰기에서 큰 잘못이지만,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동료 과학기술자와 후대 연구의 발전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더욱 엄중하게 다뤄집니다.
글쓰기 윤리를 위한 실천
그렇다면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기술문서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깨지 않고, 윤리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를 꼽아보았습니다.
자료의 선택적 강조 유의하기
제안서, 연구 보고서 등 기술문서를 작성하며 다양한 자료와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 주장과 충돌하는 글이나 세운 가설과 반대되는 자료를 찾을 때가 있습니다. 혹은 내 의견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발견해 인용하고자 할 수도 있죠. 이때 자료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하는 결론을 증명하는 데이터에 비중을 좀 더 할애하거나, 주장과 모순되는 데이터를 생략하는 일은 모두 ‘자료의 선택적 강조’에 해당합니다. 이는 ‘기술문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작성한다’는 전제를 어기는 일이 됩니다. 자료를 선택적으로 강조하면 독자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직접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또한 자칫 특정한 입장에 편향된 글이라는 인식을 주어 글의 신뢰도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자료의 선택적 강조에 유의하며 다른 의견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논조도 객관적으로 제시할 때, 비로소 나의 의견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더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시각화의 오류 주의하기
기술문서의 시각 자료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그래프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각화 자료인데요. 그래프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동일한 데이터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독자가 그래프의 기타 요소(범주, 라벨 등)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시각화 자료를 접한 독자는 그래프 해석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시각화 오류의 예시로 아래 두 그래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위의 두 그래프는 사실 동일한 데이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그래프 모두 2018년 - 2021년 분기별 전국 돼지 농장 수 데이터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y축 범주를 서로 다르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그래프의 y축은 6,000부터 시작하는 반면, 왼쪽 그래프의 y축은 0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그래프로는 농장 수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왼쪽의 그래프를 보면 절대적인 감소치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의 그래프를 접한 독자가 y축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분기마다 농장 수가 크게 줄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처럼 가로축이나 세로축을 임의로 조정할 경우, 그래프의 면적이 달라져 실제 데이터의 증감과 다르게 왜곡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입체 효과를 주어 동일한 막대그래프 크기가 달라 보이거나, 파이 차트(원형 차트)의 총합이 100%를 넘는 등 시각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인용과 출처 표기하기
무(無)에서 유(有)가 만들어지는 분야가 있을까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학술·지식 분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술·지식 분야는 기존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만큼 타인의 저작물을 존중하기 위한 정확한 인용 및 출처 표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표나 사진, 웹 페이지 등 글을 쓰며 참고한 모든 자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인용 표기
다른 사람이 작성한 문장을 빌렸다면 인용 표기를 구분해 내가 쓴 문장과 구분해야 합니다. 인용은 크게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으로 나뉩니다. 직접인용은 큰따옴표(“”)를 사용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을 말하며, 간접인용은 원문을 자신의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안에서 어떤 내용을 인용할 경우, 인용부호와 주석을 함께 작성해야 합니다. 주석은 본문에서 인용한 내용의 출처를 밝히거나, 내용을 덧붙여 설명하는 글입니다.
구분 | 설명 | 예시 |
직접인용 | 큰따옴표를 사용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 |
조셉 퓰리처는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무엇보다 정확하게 써라, 그러면 그들은 그것의 빛에 의해 인도될 것이다."1)는 말을 남겼다. |
간접인용 | 원문을 자신의 문체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 - 강조를 위해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기도 함 |
조셉 퓰리처에 따르면 글은 간결하고, 명료하고, 그림과 같으며, 무엇보다 정확하게 써야 한다.1) |
주석 | 본문에서 인용한 내용의 출처를 밝히거나(참조주), 내용을 덧붙여 설명(내용주)하는 것 - 작성 위치에 따라 각주, 내주, 미주로 나뉨 - 각주(문장이 위치한 페이지 하단에 작성)를 주로 사용 |
“과학 ・ 기술 분야의 작가에게는 윤리적으로 써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1)고 한다. —— 1. 토머스 E. 피어설, 켈리 카길 쿡, 테크니컬 라이팅의 7가지 원리 (경기: 북코리아, 2013), 124. |
인용 시 주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직접인용의 경우, 인용한 부분이 빠짐없이 큰따옴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간접인용은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옮기지 않되 자신만의 어휘와 표현으로 원문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또한 직접/간접인용한 문장 바로 뒤에 인용부호를 써야 합니다.
출처 표기
한편 출처 표기는 독자에게 글의 받침 근거를 안내하고 관련 문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표절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수단입니다. 국내외로 다양한 출처 표기 체계가 있는데요. 분야마다 사용하는 체계가 조금씩 다릅니다. 테크니컬 라이팅에서 주로 쓰이는 체계는 시카고 양식(Chicago Manual of Style)과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양식입니다. 자료명 작성 시 기울임체 대신에 굵은 글씨체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국내 자료를 APA 양식으로 참고문헌 작성할 때에는 통일된 양식이 없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시카고 양식 (참고문헌) |
단행본 | 저자명. 책제목. 발행지: 발행처, 발행년도. |
학위논문 | 저자명. “글제목.” 학위명, 학위수여대학, 학위수여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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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 저자명. “글제목.” 정기간행물명 권, 호 (연월차): 논문 시작과 끝 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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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 저자명. 책제목. 원본 출판년도. 번역자 표시와 번역자. 발행지: 발행처. 번역본 발행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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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양식 (참고문헌) |
단행본 | 저자명 (발행년도). 책제목 (판차 혹은 편저 표시). 발행지: 발행처. |
학위논문 | 저자명 (발행년도). 글제목 (학위명, 학위수여대학). 온라인 위치 - 온라인 자료인 경우 URL을 덧붙이고 마침표를 찍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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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 저자명 (발행년도). 논문제목. 정기간행물 제목, 권(호), 인용논문의 시작과 끝 쪽수. | |
번역서 | 저자명 (번역본 출판년도). 번역된 책제목. 번역자 (번역자 표시). 출판지: 출판사. (초판 표지 원본 출판년도) -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지 않음 |
그러나 주로 웹페이지 형태로 공유되는 기술문서에서는 이러한 인용과 출처 표기 체계를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웹페이지 하단에 각주를 작성하면 접근이 어려울뿐더러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웹사이트형 기술문서는 본문 중간에 안내 상자(Note box)로 추가 설명을 덧붙이거나, 하이퍼링크를 활용해 참조 문서 또는 사이트로 바로 이동하게끔 지원합니다.
마치며
이렇게 테크니컬 라이터가 지켜야 할 글쓰기 윤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윤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할 때 비로소 윤리적으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을 존중하고,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것만으로 글쓰기 윤리의 첫걸음이 됩니다. 사실 저희도 여전히 인용과 출처를 표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출처를 작성할 때마다 늘 문헌 표기 체계를 참고하는데요. 인용을 구분하고 출처를 표기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다양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틈틈이 메모하는 습관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 번 빠뜨리기 시작하면, 밀린 숙제해내듯 방대해진 출처 정리에 시간을 소요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되면 본문을 다시 한번 살펴볼 여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도록 참고 자료의 URL을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럼 저희는 또 테크니컬 라이팅 관련 유익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시카고 양식으로 작성한 참고문헌 목록입니다.
[1] 김기한. 논문의 힘. 서울: 현실문화, 2016.
[2] 이성규. “챌린저호는 왜 73초 만에 폭발했을까 (하).” The Science Times. July 8, 2010. Accessed January 16, 2023.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챌린저호는-왜-73초-만에-폭발했을까-하/.
[3] 이인재, “바람직한 학술적 글쓰기를 위한 연구윤리의 이해.” Endocrinology and Metabolism 26, no.1 (2011): 12-24.
[4] 정희모, 김현주. 대학 글쓰기. 서울: 삼인, 2008.
[5] 토머스 E. 피어설, 켈리 카길 쿡. 테크니컬 라이팅의 7가지 원리. Translated by 김양숙, 장석진. 경기: 북코리아, 2013.
[6] Annemaire Hamlin, Chris Rubio, and Michele DeSilva. “9.2 PRESENTATION OF INFORMATION.” Open Oregon Educational Resources. Accessed January 16, 2023. https://openoregon.pressbooks.pub/technicalwriting/chapter/9-2-presentation-of-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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