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Technical Writer(이하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Sandy입니다. :)
이번 포스팅에서 제가 속한 테크니컬라이팅 팀에서 하는 일과 관련된 Technical Writing, Technical Writer, Technical Communicator 등의 개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업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아니 대부분, <테크니컬 라이터> 라고 들었을 때, 기획이나 개발 직군과 달리 생소한 느낌을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아쉽긴 하지만, 제가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어느 회사에서나 규모는 작아도 어느 직무보다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념과 직무가 다소 생소하더라도 꼭! 끝까지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 🤔
어떤 분들은 테크니컬 라이터를 기술 작가구나...라고 직역을 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단어가 내재하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려우실 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Technical Writer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기술 작가"는 맞지만, 개인적으로 다소 생소한 표현으로 들립니다.)
저는 병아리 테크니컬 라이터 시절 회의차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제 직무를 소개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새 앵무새처럼 테크니컬 라이터에 대해 자동 답변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는 백엔드 개발자입니다"라든지 "저는 UX 디자이너입니다"라고 자기소개가 한 줄로 끝나는 직종과 비교했을 때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가야 하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테크니컬 라이터"란?
이쯤에서 저도 '어떻게 하면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업을 쉽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되고, 바로 이런 고민의 시작이 Technical Writing, 즉 기술적 글쓰기의 시작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테크니컬 라이터는 단순히 과학 기술 정보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소설 같은 창작 글쓰기를 제외한 모든 유형의 글쓰기에서 그 뜻을 분명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테크니컬 라이터의 정의를 검색해 보면 업계마다 그 정의가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조업에서의 테크니컬 라이팅은 하드웨어 상품이나 기능 설명이 메인이고, 장비 출하 시 종이 매뉴얼을 필수 구성품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매뉴얼 라이터"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IT 회사의 경우 API 레퍼런스[그림 2]나 SDK 적용 가이드 등이 주요 과제이며 종이 형태보다는 웹으로 콘텐츠를 게시하는 등 각 업계에서 요구하는 테크니컬 라이팅의 요건도 조금씩 차이 발생합니다. 특히 IT 기업의 경우, 일반 독자가 아닌 프로그래머, 개발자, 시스템 설계자 등을 대상으로 샘플 코드와 API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므로 "API 라이터"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이 용어는 API에 국한되기 때문에 이보다는 테크니컬 라이터가 더 폭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저는 테크니컬 라이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는 개발자 중심의 기술 관련 용어나 설명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가공, 배포, 관리하며,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철저한 문서화 작업을 계획하고 수행합니다.
여기서 잠깐! 테크니컬 라이터들만 테크니컬 라이팅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테크니컬 라이팅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이메일을 작성할 때 본문을 구조화하여 간결하게 쓰거나, 사내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일목요연하게 특정 메시지를 파급력 있게 전달하는 동료들 또한 모두 테크니컬 라이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즉, "회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글쓰기는 테크니컬 라이팅이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예를 들어 이메일을 쓸 때도 타깃 독자를 파악하여, 꼭 필요한 주제에 대해 적절한 내용, 길이, 톤을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테크니컬 라이팅입니다. 그저 이메일 한 통을 쓰는데 이만한 고민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글쓰기 전문 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Instructional Solutions 사이트에서 How to Write a Business Email이라는 게시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혹시 테크니컬 라이팅을 모두가 하는 것이라면 굳이 테크니컬 라이터가 꼭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수도 있는데요. 인하우스 테크니컬 라이터는 문서의 템플릿 기획, 목차 구성, 개발자와 협업을 통한 원문 리라이팅, 검수, 문서 포매팅 및 퍼블리싱 등의 작업을 통해 스케줄에 맞춰 산출물을 체계적으로 도출해나가는 일종의 "기수" 역할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좀 더 큰 목표로는 콘텐츠 작업을 넘어 전사 멤버들이 일관된 스타일에 맞게 명료한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준비하고 교육하는 막중한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테크니컬 라이터의 역사
테크니컬 라이터가 21세기 신종 직종인가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테크니컬 라이팅의 역사를 언급하려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테크니컬 라이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서에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최초의 테크니컬 라이터로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c. 1340 ~1400)를 거론하며, 그가 1391년에 편찬한 <아스트롤라베에 관한 소고(Treatise on the Astrolabe)>가 현대적 테크니컬 라이팅의 시초가 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아이작 뉴턴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기술 서적을 편찬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출판한 책을 당시 "기술 서적"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테크니컬 라이팅 기법을 적용한 기술 서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47년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컴퓨터가 이전보다 저렴하게 보급되면서 각종 디바이스들을 설명하고 문서화할 수 있는 인력들의 수요가 증가했고, 본격적으로 1970년~1980년대 가전제품이 보편화됨에 따라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1960년과 2002년에 제조물 책임법이 시행되며 사용 설명서가 제품의 필수적인 구성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 테크니컬 라이터의 수요를 촉발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테크니컬 라이팅이나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종은 해외에서는 꽤 오랜 역사와 인지도가 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교 정규 과정으로 테크니컬 라이팅 전공이 개설되어 있고[그림 4], 특히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이공계 학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테크니컬 라이팅 코스를 제공하고 있어 테크니컬 라이팅이라는 용어 자체가 전혀 생소하지 않은 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부 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테크니컬 라이팅 과목이 개설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테크니컬 라이터를 소개할 때, 구구절절 설명을 붙여야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점차 테크니컬 라이터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관련 협회나 교육 기관도 점차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2018년 발표한 미국 노동 통계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의 보고서에 따르면 테크니컬 라이터의 수요는 IT와 전기전자 산업군에서 2018년부터 약 10년 동안 일자리가 약 8% 증가할 것이라고 하니, 국내에서도 더 많은 테크니컬 라이터가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로 진화
최근에는 테크니컬 라이팅을 검색해 보면 "테크니컬 커뮤니케이션"과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Technical Communicator)"라는 파생 용어가 함께 검색됩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주로 종이 책자이다 보니 "무언가를 쓰다 = Write"라는 표현이 맞았을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종이책보다는 웹이나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이 더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테크니컬 라이터의 업무가 비단 종이책 매뉴얼 작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서화 기획, 편집, 리라이팅, 디자인, 프로젝트 관리, 문서 엔지니어링, 퍼블리싱에 이르기까지 담당하는 업무 범위가 광범위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라이터"라는 표현은 사실상 맞지 않습니다. 실제 테크니컬 라이터들은 문서화 기획이나 개발자와 인터뷰, 정보 리서치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순수 글쓰기 시간은 10%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번 콘텐츠가 빠르게 변경되는 업무 환경에서는 기술 문서의 에디터 역할과 초안 구성, 문서 설계 등의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소통의 주체, 즉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구글이나 아마존 등의 IT 기업들도 아직 인하우스 포지션에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Breadwinner(집에 빵을 가져오는 자) = 가장"이라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표현 방식일 뿐, 테크니컬 라이터를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기가 곧 올 것입니다. 일찍이 Society for Technical Communication 같은 협회들은 이미 테크니컬 라이터 대신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를, 테크니컬 라이팅 대신 "테크니컬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Technical Writer를 줄여서 "TW"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콘텐츠 전달 방식과 업무 범위의 확장으로 이제는 '테크니컬 라이터'보다는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로 더욱 많이 불리게 될 것입니다.
마치며
부족한 글솜씨로 제 직업인, 테크니컬 라이터를 소개해봤는데 어떠신가요?
부디 제 마음처럼 매력적인 직업으로 잘 전달되었길 바랍니다. 😊
제가 속한 테크니컬라이팅팀에서는 앞으로 테크니컬 라이팅과 관련한 유용한 주제를 본 블로그에 게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려요.
또한, 기회가 된다면 실제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저희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다른 직군의 크루들과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등을 재밌게 소개하는 글을 또 다뤄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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